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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것저것 써보고 있는 자아 D입니다.

요즘 KBS에서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공영방송 50주년 특별기획 대하 사극 고려거란전쟁이 방영이 시작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고려 거란 간의 전쟁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시대적으로 1009년 고려 목종부터 고려 현종까지 1019년까지의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고려거란전쟁-포스터
KBS 사극 고려거란전쟁

강감찬

강감찬은 948년 12월 27일에 금주 낙성대 지금의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에서 태어납니다. 1031년 9월 15일 향년 82세의 나이로 사망하게 됩니다.

 

고려의 문관으로 동아시아 역사 전체에 영향을 미친 구국영웅이자 정치적으로도 고려의 리즈 시절을 이끈 현종의 치세에 큰 도움을 준 명재상이었습니다.

또한 고구려의 을지문덕, 조선의 이순신 등과 비견되는 명장으로 칭송받고 있습니다. 강감찬은 서희, 양규, 최영, 정몽주와 더불어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걸출한 위인입니다.

 

현대 한국인들에게는 주로 거란을 물리친 장군으로 알려져 무신으로 오해받지만 문과에 장원급제하고 나중에 문하시중에 오른 문관입니다. 강감찬은 정식 무관직에 봉해진 적이 없고, 여요 전쟁 때 받은 상원수직은 임시 군단의 지휘관이라 비상설직이므로 품계가 있는 공식 무관직이 아닙니다.

생전 받은 작위는 남작에서 진작된 후작입니다. 봉지명은 천수현(天水縣). 아마 한국사에서 가장 유명한 후작일 듯합니다.

진주 강 씨 중 인헌공파의 파조이기도 합니다. 오늘날의 서울특별시 관악구에서 출생한 관계로 인헌공 파는 '금천(衿川) 강 씨'로 따로 분류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강감찬의 생애

젊은 시절의 이름은 강은천(姜殷川)이었습니다. 강감찬은 과거 급제 이후에 개명한 이름이라고 합니다. 《속자치통감》에는 강감보(姜邯寶)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의 할아버지는 고구려 말기의 장군 강이식으로 진주 강 씨입니다. 아버지는 태조 왕건을 도와 고려 개국에 일조한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 강궁진(姜弓珍)이었습니다. 강궁진이 고려 개국 당시에 경주 지역에서 금천으로 이주했고 거기서 강감찬을 보았습니다.

강감찬 탄생 설화

여러 설화에서 강감찬의 어머니가 여우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강감찬의 아버지 강궁진이 태몽을 꾸고, 훌륭한 아들을 낳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을 때, 귀가 중 여인으로 둔갑한 여우를 만나 관계를 맺어 강감찬을 낳았다고 합니다. 또한 태어날 때 문곡성(文曲星)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설화가 있는 걸로 유명한데 문곡성은 북두칠성의 4번째 별로 문(文)과 재물을 관장하는 별입니다. 그래서 그가 태어난 생가의 이름이 낙성대 입다.

강감찬 관직

《고려사》 <열전>에 의하면 젊은 시절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기발한 지략이 많았다고 하며, 983년(성종 2)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했는데 이때 나이가 36세로 제법 늦게 관직 생활을 시작한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983년 이후 1009년(목종 말년)에 예부시랑이 될 때까지 《고려사》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 후 강조의 정변으로 젊은 현종이 즉위하고 나서는 출세길이 트였는데, 1010년(현종 1년) 요나라의 성종이 400,000명의 대군으로 침공하자 대세 의견인 항복을 반대하고, 홀로 몽진을 주장해 이를 관철시켰습니다.

 

그 후 하공진으로 하여금 요 성종을 설득하여 물러가게 했으며 이후 한림학사, 승지, 중추원사, 이부상서, 서경유수, 내사시랑평장사에서 문하시중까지 올라가 승승장구했고, 함경도 쪽으로 파견되어 동여진의 침입에 대비하기도 했습니다.

 

1019년(현종 10년) 거란의 제3차 침공 당시 서북면행 영도통사였던 강감찬은 고려군의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어 대거란 방어 작전을 진두지휘했습니다.

이때 고려군 사령부의 무관들은 성공적인 기선 제압, 거란군의 전격전을 대비한 청야전술과 유격전, 귀주 대첩에서 보여준 포위섬멸전까지 철저한 작전 계획을 세우고 완벽하게 실행함으로써 재침입을 해 온 거란군을 격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거란의 제3차 침공이 끝난 1020년(현종 11) 강감찬은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는데, 이를 두고 토사구팽을 염려했던 것인지도 모르지만 74세나 되는 고령에 전쟁터를 다녀왔으니 건강 문제였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다만 훌륭한 군주들이 그렇듯 현종은 강감찬에게 지팡이를 선물로 주고 3일에 1번만 출근토록 명령했다고 합니다.

 

강감찬은 고려 현종이 붕어하고 3개월 뒤 8월 향년 84세의 나이로 사망하게 됩니다.

글을 마치며

60.5%라는 경이로운 시청률을 자랑했던 태조 왕건, 해신 장보고, 대조영, 대왕의 꿈에서 태종 무열왕, 임진왜란 1592(5부작)에서는 이순신까지 사극의 제왕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는 최수종이 이번에는 강감찬 역으로 출연하고 있는 '고려거란전쟁' 왕건을 도와 고려를 건국하는데 공을 세운 강이식 장군이 이었고 그의 손자가 강감찬입니다. 왕건인 최수종을 도와 고려를 세워 손자를 봤는데 그게 또 최수종인 모양입니다.

 

한민족의 영웅 5손가락 안에 꼭 들어가는 강감찬 장군이 문과라는 것과 강감찬 장군이 태어난 곳이 낙성대라는 것도 글쓴이는 처음 안 사실이었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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