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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것저것 써보고 있는 자아 D입니다.

오늘은 부마 항쟁에 대해서 써보도로 하겠습니다.

국가기념일인 부마민주항쟁은 이번 정부 들어와서 홀대 논란에 휩싸이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불참하고 차관급을 보낸 것인데요.

잘못했으면 광주민주화 항쟁 전에 학살이 일어날 수도 있었던 부마항쟁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부마민주항쟁-홀대-논란
부마민주항쟁 홀대 논란 기사들

부마항쟁

부마항쟁은 1979년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부산과 마산 등지에서 일어난 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입니다.

박정희의 제4 공화국 체제에 대한 민중의 불만이 폭발한 사건으로 유신정권을 무너뜨린 결정적인 계기가 된 사건입니다.

부산과 마산 등지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 그래서 부마 항쟁입니다.

부마 항쟁 배경

1970년대 후반 들어서면서 박정희 정권은 한계에 봉착하기 시작했습니다. 유신 헌법 제정 이후로 학생 운동, 시민운동 등에 대한 찬성론이 커졌으며, 이를 누르기 위해 학생운동을 탄압했고, 당시 미국은 지미 카터가 대통령직을 수행하던 시절이고 박정희 정부의 정치탄압으로 인한 인권 문제를 심히 비판, 압박을 하던 상황이라 한미관계는 최악이던 시절이었습니다.

 

1차 오일쇼크로 물가상승률이 크게 늘어나면서 한국도 경제위기에 봉착했고 1978년에 건설주 파동으로 주식시장의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면서 경제에 다시금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고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2차 오일쇼크가 닥치면서 물가상승률은 2년 만에 10.1%에서 18.3%로 올랐습니다.

 

이로 인해 경공업이 중심이 된 부산, 마산 지역의 많은 중소업체들은 이러한 타격의 직격탄을 받았습니다. 이렇듯 당시의 경기 불황과 부가가치세 신설 등의 여파로 인해 박정희 정권에 대한 경남지역 민심은 크게 악화되고 있었고, 이런 요인은 이후 시민들이 학생들에게 호응하는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하였습니다.

부마 항쟁 전개

민심이 안 좋아지고 박정희 정권이 당시 야당대표인 김영삼을 탄압하였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10월 13일 신민당 의원 66명 전원이 사퇴서를 제출하였으나 공화당과 유정회 합동조정회의에서 '사퇴서 선별수리론'이 제기되어 부산 및 마산 출신 국회의원들과 그 지역의 민심을 크게 자극하였습니다.

 

김영삼의 정치적 본거지인 부산에서는 10월 15일 부산대학에서 민주선언문이 배포되고, 16일 5,000여 명의 학생들이 시위를 주도, 시민들이 합세하여 대규모 반정부시위가 전개되었습니다. 시위대는 16일과 17일 이틀 동안 정치탄압 중단과 유신 정권 타도 등을 외치며 파출소·경찰서·도청·세무서·방송국 등을 파괴하였고, 18일과 19일에는 마산 및 창원 지역으로 시위가 확산되었습니다.

 

이에 정부는 18일 0시 부산 지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1,058명을 연행, 66명을 군사재판에 회부하였습니다.

 

부산에 육군 특전사의 2,000여 명의 병력이 투입되었지만 시위는 오히려 부산을 넘어서 마산까지 번졌습니다. 10월 18일 경남대학교 학생 1,000여 명이 기동 경찰 300여 명과 대치하다 투석전을 벌였고 3·15 의거탑에서 1,000여 명이 스크럼을 짜서 유신 철폐와 독재 타도 및 언론 자유를 요구하는 시위를 전개하는 등 시내 곳곳에서 대규모 시위가 전개되었습니다. 

그날 저녁부터는 학생들과 시민 수천 명이 시내 중심가를 메우고 경찰과 투석전을 벌이는 대규모 군중 시위를 전개하였습니다.

20일 정오 마산 및 창원 일원에 위수령(衛戍令)을 발동하고 군을 출동시켜 505명을 연행하고 59명을 군사재판에 회부하였습니다.

부산에-군이-투입되었다
부산에 시위를 막으려 투입된 군인

글을 마치며

정부의 강경 진압으로 시위는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으나,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을 사살한 10·26 사건이 발생하면서 유신 체제는 종결되었습니다.

그 유명한 '각하 정치를 좀 대국적으로 하십시오'라는 명언을 남긴 사건의 배경은부마행 쟁입니다. 부마항쟁에 국민을 학살한다는 결론을 내리려고 고민할 때 김재규가 박정희를 쏘면서 한말입니다.

 

부마민주항쟁은 4·19 혁명, 5·18 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과 함께 한국 현대사에서 민주이념을 계승한 민주항쟁의 하나로 평가받으며, 2019년 9월 17일 부마민주항쟁  발생일인 10월 16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습니다.

 

모두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는 과거 우리 형제들이 피 땀 흘려 만들어낸 민주주의입니다. 퇴보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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