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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것저것 써보고 있는 자아 D입니다.
최근 글쓴이도 좋아하는 프로그램 tvN의 '벌거벗은 세계사' 방송에서 뭉크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뭉크에 대해 좀 알아보겠습니다.
에드바르 뭉크
에드바르 뭉크는 영어로 Edvard Munch 라 쓰며 1863년에 태어나서 1944에 죽었습니다.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까지 활동한 노르웨이의 화가이자, 피카소와 함께 현대미술의 모토가 된 '표현주의 창시자로 꼽히고 있는 세계적인 화가입니다.
특히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절규'는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도 한 번쯤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며, 2012년 경매에서 1억 1990만 달러 한화로는 1368억 원에 낙찰되며 세계미술 경매의 역사를 새롭게 바꾸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뭉크는 살아생전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비난과 악평에 시달렸습니다. 지독한 정신질환으로 일생을 공포와 불안에 시달려야 했을 만큼 기구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대표작 '절규'를 둘러싼 숨겨진 비밀이 있다는데 그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죽음의 슬픔 뭉크
뭉크는 1863년 12월 12일 노르웨이의 남동쪽에 위치한 오달스브룩에서 5남매의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뭉크는 불과 5세일 때 어머니를 폐결핵으로 잃어야 했습니다.
뭉크는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과 상처를 오랜 시간 극복하지 못했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어머니가 죽던 순간을 그림으로 남긴 것이 '죽은 아이와 엄마'라는 작품입니다.
또한 어머니의 죽음의 충격은 아버지의 이상행동으로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뭉크의 아버지는 아내 사후 종교에 의지하다가 광신도가 되었고, 어린 자녀들에게 공포 동화를 읽어주거나 종교를 강요하는 등 육체적-정신적 학대를 일삼았다고 합니다.
이로 인하여 뭉크는 어린 시절부터 불안장애를 가진 사람으로 성장하게 됐습니다. 훗날 뭉크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삶과 인간에 대한 끊임없는 공포 속에서 살아야 했다"라고 회상하기도 했습니다.
뭉크는 어머니의 죽음이 어린 나에 큰 충격이었는지 비슷한 그림을 또 하나 남깁니다. '죽은 엄마'의 작품입니다.
또 뭉크에게 14세였던 1877년에는 누나 소피에마저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누나의 죽음을 회상하며 여러 작품을 그리는데 '병실에서의 죽음' '병든 아이' 등이 있습니다.
뭉크의 절규의 비밀
뭉크의 대표작 절규에는 약 100여 년간 숨겨져 있던 비밀이 존재했었습니다. '절규'의 노을 속에는 "미친 사람만이 그릴 수 있다"는 의미심장한 낙서가 작게 쓰여 있었던 것입니다.
뒤늦게 이를 알게 된 미술계에서는 대체 누가, 언제, 왜 이런 낙서를 했는지를 두고 해석이 분분했습니다. 뭉크 사후 시간이 한참 지나 2021년에야 필체 대조 결과 밝혀진 낙서의 진범은, 놀랍게도 '뭉크 본인'이었습니다.
뭉크는 평론가 들과 대중들에게 많은 비판을 들었고 또한 뭉크의 정신상태까지 의심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뭉크 역시 자신이 불안과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고, 낙서를 통하여 스스로를 '미친 사람'이라고 표현하며 자신의 광기를 인정한 것이었습니다.
뭉크의 연애사
절규는 기구했던 탄생 배경만큼이나 뭉크 사후 몇 차례 도난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범인을 검거하고 결국 작품을 환수하기는 했지만, 그 반환 과정을 둘러싼 논란은 지금까지도 의혹으로 남아있기도 합니다.
뭉크는 연애사도 엉망이었습니다. 첫사랑은 불륜이었고 그 여인은 막상 이혼하고 다른 남자에게 가버렸습니다.
두 번째 여인은 먼 친척이었는데 가장 친한 친구에게 빼앗겼습니다.
세 번째 연인은 자신의 스토커 였는데 자신과 결혼을 해주지 않으면 자살한다하며 권총으로 협박했고 이를 말리는 과정에서 뭉크는 손가락을 절단하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정작 그 여인은 이 사건이후 3주만에 새로운 남자와 사랑에 빠져 뭉크를 버리고 떠났다고 합니다.
글을 마치며
세번째 연인 사건 이후 뭉크는 정신상태가 더욱 악화되어 스스로 정신병원에 입원하였으며 병원에서 퇴원할 때쯤은 자신의 화풍을 탄압하는 히틀러의 나치정권에게 탄압받았습니다.
결국 뭉크는 나치의 패망을 보지 못하고 1944년 1월 23일, 폐렴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묘하게도 죽는 순간 그의 손에 들려있었던 책의 제목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이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평생을 절망과 죽음의 공포 속에 시달렸음에도 뭉크가 정작 80세까지 장수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뭉크가 스스로의 예술세계에 대한 정의로 마칠까 합니다.
"나의 예술은 자유로운 고백이자 스스로의 인생관계를 직접 밝히고자 하는 시도다."